紀異 or Science

휘황찬란 서고트 왕관, 그리고 그 왕국

gogoworld 2025. 4. 6.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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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own of Recceswinth, King of the Visigoths in 7th-century, now in National Archaeological Museum, Madrid.

이 엄청나게 비싸고 우아한 물건은 7세기 스페인 서고트Visigoths 왕인 레체스윈스Recceswinth 왕관이다.

이 왕관 본체는 황금 필리그리golden filigree로 만든 원형 다이아몬드다. 이에는 극동에서 가져온 30개 사파이어와 30개 진주를 박았다.

그것은 투공openwork, 하트 모양 링크 heart-shaped links를 통해 록 크리스탈 피니얼rock crystal finial에 매달려 있고, 거기에서부터 "RECCESVINTHUS REX OFFERET"("Recceswinth the King offer [이것]")라고 적힌 가넷 상감 펜던트garnet-inlaid pendants가 걸려있다.

그 아래에는 황금 십자가golden cross 하나가 걸려 있는데 이 역시 보석으로 상감해서 걸어놨다.

톨레도 궁정 왕실 작업장 작품이며, 현재는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있다.
 

고트족의 파란만장한 이동

 
서고트족Visigoths은 고대 후기 로마 제국 내에 왕의 통치 아래 통합된 게르만족 갈래다.

서고트족은 알라리크Alaric 1세 지휘 아래 통합된 로마 동맹 야만인 군사 집단으로 발칸반도에 처음 나타났다.

기원은 다양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376년 이래 로마 제국으로 이주하여 378년 아드리아노플 전투Battle of Adrianople에서 로마군을 격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테르빙기족Thervingi 후손이 많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로마인과 알라리크 휘하 서고트족 사이 관계는 다양했는데, 두 집단은 유리할 때는 조약을 맺고, 그렇지 않을 때는 전쟁을 벌였다. 알라릭 통치 기간 동안 서고트족은 이탈리아를 침공하여 410년 8월 로마를 약탈했다.

서고트족은 이후 남부 갈리아southern Gaul에 정착하여 로마 동맹국이 되었고, 이 관계는 418년에 확립되었다.

이 동맹은 툴루즈Toulouse에 수도를 둔 독립 왕국으로 발전했고, 로마 영토의 광대한 지역을 장악한 수에비족Suebi과 반달족Vandals을 희생시키면서 히스파니아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동로마 멸망 당시 유럽

 
507년, 갈리아에서 서고트족 통치는 클로비스Clovis 1세가 이끄는 프랑크족Franks한테 종식되었으니, 그가 부예 전투Battle of Vouillé에서 그들을 격파한 것이다. 

그리하여 밀려난 서고트족은 지금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지역에서 자신들이 가장 잘 기억되는 정치 체제를 만들었다.

히스파니아를 통치하는 동안 서고트족은 여러 교회를 지었는데, 이 교회들은 살아남았고 많은 유물을 남겼는데, 최근 몇 년 동안 고고학자들이 이 유물들을 점점 더 많이 발견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발견된 유물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과라사르 보물의 봉헌 왕관과 십자가Treasure of Guarrazar of votive crowns and crosses다. 

589년경, 레카레드Reccared 1세 치하 서고트족은 아리우스파 기독교Arian Christianity에서 니케아 기독교Nicene Christianity로 개종하여 점차 히스파노-로마 신민 문화culture of their Hispano-Roman subjects를 받아들였다.

서고트 왕국이 아리우스파에서 가톨릭 정통파로 전환한 것은 갑작스럽거나 순전히 신학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산된 정치 개혁의 산물이었다.

6세기 후반을 통치한 리우비길드Liuvigild 왕은 가톨릭 정서를 수용하는 개정 삼위일체 교리revised Trinitarian formula를 제안하는 종교 회의를 개최하여 아리우스 교리Arian doctrine를 완화하려 했다.
 

서고트 전성시대

 
이는 고트족 아리우스파와 히스파노-로마 가톨릭교도 사이 내부 분열을 해소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제한적인 성과만을 거두었다.

589년, 그의 아들 레카레드Reccared가 공식적으로 아리우스주의를 버리고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레카레드 후원으로 소집된 제3차 톨레도 공의회Third Council of Toledo는 가톨릭을 국교로 제도화했다.

이러한 신앙 고백적 재편은 종교적 통일성을 공고히 했을 뿐만 아니라, 히스파노-로마 가톨릭교도 다수 사이에서 군주제 정통성을 강화했다.

그들의 법전인 서고트 법전 Visigothic Code(654년 완성)은 히스파노 로마인과 서고트족에게 서로 다른 법을 적용하던 오랜 관행을 폐지했다.

로마니Romani와 고트족Gothi 사이에 더 이상 법적 구분이 없어지자, 이들은 통칭 히스파니Hispani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1세기 동안 이 지역은 톨레도 공의회Councils of Toledo와 주교령episcopacy 지배를 받았다.

711년, 아랍인과 베르베르인Berbers으로 구성된 침략군이 과달레테 전투Battle of Guadalete에서 서고트족을 격파했다.

서고트족 왕 로데리쿠스Roderic와 많은 서고트족 지배 엘리트가 전사했고, 그들의 왕국은 급속히 붕괴되었다.

이후 스페인 북부에 아스투리아스 Asturias 왕국이 건국되었고, 펠라기우스Pelagius가 이끄는 기독교 군대에 의해 레콩키스타Reconquista 가 시작되었다.

서고트족은 로마 제국 서쪽 절반이 멸망한 후 카롤링거 왕조가 부상할 때까지 서유럽에서 유일하게 새로운 도시들을 건설했다.

현대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에는 서고트어에서 유래한 여러 이름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가장 중요한 유산은 서고트 법전으로, 왕국이 멸망한 후 수 세기가 지난 중세 후기까지 기독교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 지역에서 법정 절차의 근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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