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레디에이터는 식스팩? 뚱땡이였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검투사들은 식스팩 복근six-pack abs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떨리는 피하 지방으로 이루어진 보호용 쿠션을 찼다.
왜냐?
이 경기장 전사들은 끊임없이 탄수화물로 배를 채웠기 때문이다.
그들의 식단은 보리와 콩이 많고 동물성 단백질이 적었으며 오늘날 식스팩 형제들이 식단과는 전혀 달랐다.
하지만 저 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우람한 근육질, 식스팩으로 글레디에이터들은 장착한다.
그들은 육식을 거의 하지 않았고 대신 탄수화물로 찌운 살덩이들이었다.
우리한테 익숙한 검투사 외양은 터키 에페소스에 위치한 약 2,000년 된 검투사 무덤에서 비롯한다. 이 공동묘지에는 67명에 달하는 검투사와 그들 중 어떤 배우자로 추정되는 여성 노예 1명이 묻혔다.
고고학도들은 무덤 부조 세트를 통해 매장된 시신들이 대부분 검투사임을 알 수 있었다.
이들 부조는 대체로 검투사 전투 장면을 묘사하며 쓰러진 검투사가 많이 등장한다.
68개 골격 중 어느 것도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팔과 다리 뼈, 두개골과 치아가 충분히 보존되었다.
연구팀은 "동위원소 분석"이라는 기술을 사용해 골격 잔해에 칼슘과 아연을 포함한 원소가 있는지를 알아봤다.
이를 통해 그 식단 일부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저들이 동물성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풍부한 콩류, 건강한 칼슘 용량을 거의 섭취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사실은 당시 증언에서도 엿본다. 플리니는 자연사에서 "보리 [혹은 밀]먹는 사람들barley eaters"이라는 뜻의 호르다리hordearii라는 별명으로 검투사를 지칭한다.
흥미롭게도 연구진에 따르면 검투사들의 채식 위주 식단은 가난이나 노예 지위의 결과가 아니었다.
검투사로 싸운 남녀는 노예로 알려졌으나 이는 일부에 국한한다.
검투사 대부분이 전쟁 포로와 죄수 출신이지만 일부는 징병 초기 기간이 끝난 후 임금을 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검투사가 된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체중 증가 음식, 곧 뚱땡이 식단을 먹었을까? 연구진은 뚱뚱한 신체, 곧 지방덩어리가 신체 보호층을 형성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지방층이 두텁게 형성되면 신경을 상대적으로 다칠 위험이 줄어들고 출혈 또한 덜 위험하게 해 주기 때문이라는 것.
나아가 뚱땡이 글레디에이터는 관중이 원하는 광경을 연출하는 데 유리했다. 피를 흘리면서도 그 상처가 치명적이기 않기에 계속 싸우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럼에도 왜 당시 검투사 그림은 식스팩일까?
이에 대한 답변은 의외로 간단해서 포토샵과 같은 기능을 활용해 검투사를 그런 모습으로 그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 글레디에이터는 뚱땡이들이었는데, 고대 그리스가 이상적 남성상으로 모조리 근육질로 묘사했듯이 검투사도 그런 모습으로 일부러 창조했다는 것이다.
로마시대 검투는 인기 스포츠였다. 오늘날의 오스트리아 빈에서 에베소, 튀르키예, 그 너머까지 100개 이상의 검투사 학교가 있었다.
가장 유명한 학교들은 콜로세움 주변에 모여 있었고, 로마를 방문하는 방문객들은 콜로세움과 터널로 연결된 가장 큰 학교인 루두스 마그누스Ludus Magnus 유적을 여전히 본다. .
이런 고고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전문가들이 주장하기를 이런 훈련 센터를 "요새 감옥"이라고 말한다.
이들 학교는 대체로 경기장으로 향하는 출구 하나만 있었다.
이들은 실상 갇힌 상태서 끊임없이 훈련하고 식단을 제공받았다.
당시 검투사 처우는 생각보다는 좋았다.
검투사들은 상당한 투자였으며, 고고학 유적지는 요새가 "겨울 훈련을 위한 가열된 바닥, 목욕탕, 의무실, 배관, 인근 묘지를 포함한" 것임을 증명합니다. 비록 죄수들은 뛰어난 의료 서비스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검투사들은 숯불에 탄 식물이나 뼈를 갈아 만든 칼슘 보충제를 정기적으로 마셨다.
검투사 게임을 시작하기 위해 엘리트 로마인들은 큰 연회를 열었고, 그 자리에 검투사들을 초대하기도 했다.
물론 일부 검투사는 기쁨을 배가하기 위해 죽임을 당해야 했다.